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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칼뱅의 창세기 문자적 해석에 대한 견해 Christian Life

위대한 개신교 종교개혁가였던 장 칼뱅(역주: 프랑스의 초기 종교개혁가로 마틴 루터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종교개혁가이며, 장로교의 시조격인 인물.)은 문자적인 "최근에 일어난 6일 창조"를 지지했다. 1554년 출판된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그는 초기 교회의 교부였던 오리게네스의 비유적인 해석을 강하게 거부하며, 그러한 해석이 성경의 의미를 "분별 없이 해석" 하고 "심히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하였다. 또한 칼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 역시 뒤집고자 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사실 창조는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창세기는 인간의 제한한 이해력을 위해 그 과정을 6일에 걸쳐 일어났다는 '이야기'로 쓴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칼뱅은 "하나님이 순식간에 완벽히 행하신 일을 모세가 그저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6일로 나누어 두었다고 주장하는 억지는 지나치게 난폭하다."라고 썼다. "차라리 하나님 스스로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6일에 걸쳐 일하셨다고 결론을 내리도록 하자." 비록 하나님께는 "한순간이 천 년과 같"으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시간을 들여 일하실 필요"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문자 그대로 6일에 걸쳐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는 "우리가 그 일하신 것을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초청하신 것이다." 

일부 독자들은 (예를 들자면 2001년 <앤드루스 대학 신학과 연구(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에 수록된 피터 M. 반 베멜렌 (Peter M. Van Bemmelen)의 "신적인 수용과 성경적 창조 (Divine Accommodation and Biblical Creation)"라는 글에서 나타나듯이) 앞서 소개된 것과 같은 칼뱅의 서술만을 보고 현대의 신앙-과학 논쟁에 있어 칼뱅의 중요성을 20세기의 젊은 지구 창조론과 일치하는 성경의 문자주의 해석에 대한 그의 명백한 확신에서 찾을 것이다. 그러나 칼뱅의 창세기 주석을 주의 깊게 읽은 독자라면, 칼뱅이 창세기와 과학적 추론에 대해 일부 문자주의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로우며, 현대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원천이 된 그 형체도 없고 혼돈한 덩어리"

칼뱅은 천지 창조의 첫 날 모든 물질이 창조되었으나, 식물과 동물은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되려 식물과 동물은 이미 존재하는 물질들로부터 만들어졌으며, 그래서 구조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서로 비슷하고 이 창조된 우주 전체와도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칼뱅의 관점에서 볼 때, 6일간의 창조 하루하루마다 창조된 것들이 전부 완전히 무에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적 궤변에 빠져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물만으로는 물고기를 이루기에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물고기들이 무에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합리화에 기대고 있는데, (역주: 창세기 1장 20절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물고기들을 이루는 물질이 그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서 [물고기나 새의] 창조를 이야기할 때, 6일 창조 중 5일째의 일로만 국한하기보다는 이 세상의 원천이 된 그 형체도 없고 혼돈한 덩어리에 대한 이야기로서 서술하고자 한다."

칼뱅의 표현이 이해하기 어렵긴 하나, 그는 창세기에서 사용된 "창조"라는 단어가 '사건'만을 가리킬 수 있으며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을 거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6일의 창조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시대를 훨씬 앞서가는 관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은 "바다의 큰 동물들과 물고기들을 창조하셨다. 그들의 창조가 그들이 자신의 형상을 받는 때에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라, 무로부터 창조된 우주의 물질들 때문이다. 그러니까 생명체의 종류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각자의 형상은 그저 [이미 존재하던 재료에] 더해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란 진실로 전체와 부분 양쪽 모두에 대한 단어인 것이다." (역주: 여기서 전체와 부분은 각각의 온전한 동식물과 그 구성물질 및 형상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동물들을 창조하실 때 "땅의 물질들"을 사용하신 이유는 "그 분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의 각 부분을 우주 그 자체와 결합하고자 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생물들을 무에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원천이 된 형체도 없고 혼돈한 덩어리"에서 만드셨다고 선언한 칼뱅은 그럼에도 물질에 생명이 부여된 것은 자연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기적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죽어있는 물질이 어디에서 생명을 얻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물질에서 생명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번성하라고 명령하신 생물들을 완전한 무에서 창조하신 것과 비견할만한 엄청난 기적이다."

"모세는 자신을 평범한 시각에 맞추었다."

지구가 아주 오래되었고 수많은 종이 공통 조상을 갖고 있다는 현대 과학의 증거들을 알았더라면, 오늘날의 극도로 문자적인 창세기 해석에 대해 칼뱅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칼뱅의 창세기 1장 16절 해설에서 단서를 조금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해당 구절에 대한 칼뱅의 관심사는 창세기의 "큰 빛"과 "작은 빛"이라는 표현이 당대의 천문학 계산 결과와 충돌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천문학은 육안으로는 훨씬 작아보이는 별들이나 토성 같은 행성들이 사실은 "밤을 다스리게" 하신 "큰 빛"인 달보다도 훨씬 크다는 것을 밝혀냈다. 칼뱅이 문제에 접근한 방법은 간단했다: '창세기 1장 16절의 말씀은 문자적으로 해석될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가 살던 시대의 과학적 증거들과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에 대해, 이 위대한 종교 개혁가는 다음과 같이 매우 분명하게 말한다. 

"...모세는 학문적으로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않은, 평범한 상식을 지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방식으로 설명했다. 반면 천문학자들은, 인간 지성의 예리함이 파헤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큰 노력을 들여 연구한다. 그러한 연구에 반감을 가져선 안 되며, 과학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이라면 생각 없이 거부하는 일부 광신도들의 오만으로 비난받을 존재가 아니다...

모세가 과학적인 세부 사항들을 생략했던 것은, 우리가 그러한 연구를 하지 않기를 바라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지성인이 아니라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을 인도하라는 소명을 받았기에, 그들의 수준으로 내려오지 않고서는 자신의 소명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가 군중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였더라면,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을 것이다. 사실, 성령께서 모든 사람을 위한 학교를 여실 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가르치신다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천문학자가 별들의 진짜 크기를 알려고 노력하고 달이 토성보다 작다는 것을 발견할 때, 그는 우리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사물을 다르게 (역주: 토성이 달보다 작다고) 보며, 모세는 자신을 평범한 시각에 맞추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해와 달의 광채를 즐기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를 향해 당신의 손을 뻗으셨다. 우리가 이러한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일에 눈을 감는다면, 우리의 배은망덕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명민한 사람들이 모세의 무지를 조롱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모세는 하늘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 앞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이 그들의 심오한 지식을 누리도록 하자. 한편, 달의 밤하늘 광채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비뚤어진 배은망덕함에 사로잡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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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 칼뱅, Genesis (Wheaton: Crossway,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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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Spectrum 지의 웹사이트인 spectrummagazine.org에 Ron Osborn이 투고한 글을 사이트 측과 원작자의 허가를 받아 번역한 것으로, 원 글의 모든 저작권은 원 사이트인 Spectrum 지와 원작자인 Osborn씨에게 있습니다.

번역문 감수로 수고해 주신 로보스님께 감사드립니다.

This article has been translated from an article written by Ron Osborn on spectrummagazine.org, with the approval from both the magazine and the original writer. All credit for the original article belongs to Mr. Osborn and Spectrum.

원문 링크 (Link to the original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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